구약성서의 형성과정
구약성서
성서의 첫번 부분인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편집된 하나의 총서이다. 지금으로부터 3,000-2000년 전에 씌어졌으며,
약 900년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어 왔다.
구약성서는 몇 몇 예언서를 제외하고는 저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이는 고대인들이 자기 이전의 유명한 선조나 스승의 이름을 책의 저자명으로 취한 가명저자,
또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저자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서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문학비평의 방법론을 취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저자와 저술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으며, 성서의 형성과정 또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구약 성서의 형성과정은 크게 다섯 단계로 나뉘어진다.
이는 당연히 이스라엘 역사상의 중요 사건들과 맥을 같이 한다.
각 단계를 살펴보면,
구약성서 문학형성
제1시기: 다윗-솔로몬 왕국 시대,.
제2시기: 분열된 왕국시대,
제3시기: 바빌론 유배시기,
제4시기: 유배 이후부터 희랍제국 침공이전 까지,
제5시기: 희랍·로마제국 시대로 구분된다.
구약성서문학형성 제1시기, 곧 문학의 시작은 다윗-솔로몬 왕국시대의 번영과 평화를 배경으로 비롯되었다.
성조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400년간의 이집트 종살이를 거쳐 모세의 영도하에 출애굽의 모험을 거친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40년간 시나이 반도를 방황한다. 마침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을 정복하고 판관시대(1200-1000년 사이)를 거쳐 왕정을 맞이하게 된다.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은 왕국을 통일하고 여부스족들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장악하여 수도로 삼는다. 이어 남과 북의 지파들을 모아 하나의 왕국을 형성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이 왕국을 조직화한다. 최초의 구약성서문학은 바로 이 시대에 발생된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윗은 이곳에 계약의 궤를 옮겨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다윗가문과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며, 곧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왕은 ‘신의 대리자’로 받아들여진다.
하느님께서 다윗왕가와 함께 하시므로 왕을 하느님의 아들처럼 섬기게 된 것이다.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을 건축함에 따라 그러한 사상은 더욱 발전된다. 계약의 궤는 옮겨 다닐 수 있었지만, 성전은 하느님이 영원히 거하시는 장소인 것이다.
이로써 시온 사상의 모태가 마련된다.
솔로몬의 치세는 가히 이스라엘의 황금기라 부를 만하였다. 이 번영을 배경으로 최초의 문학이 태동한다. 과거의 기억들을 글로 서술하며,
사람들은 전승을 편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출애굽 또는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은 하느님께서 해방자이시오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되는 근본적인 체험이 된다.
아브라함의 언약이 어떻게 다윗에 이르러 성취되었는가를 보여 주면서, 성조들의 역사를 기술할 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이 시작되는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은 한 백성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을 자유롭게 하고자 하신다는 사상을 표명한다.
성서는 분실된 두권의 책, ‘정의로운 자에 대한 책’과 ‘야훼의 전투에 관한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가장 먼저 글로 씌어진 성서부분은 사무엘 상권 2-5장, 사무엘 하권 9장-열왕기 3장 3절인 듯하다,
각각 계약의 궤의 역사와 다윗왕위 계승사를 담고 있다.
역시 이 시대에 씌어진 글들로, 사무엘 하권 1장과 3장, 잠언서 10장 1절-22장 16절, 시편 일부가 있다.
솔로몬의 치세 이면에는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역, 무엇보다 이방인과의 접촉을 통한 우상숭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통일된 왕국은 겨우 70년동안만 유지된다.
933년에 솔로몬이 죽자 왕국은 둘로 쪼개어져 남쪽에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유다왕국, 북쪽에는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 왕국이 각각 통치하게 된다.
구약성서 문학형성 단계상으로 제2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남왕국 유다는 다윗의 왕조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다. 왕은 민족의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앞에서 민족을 대표한다. 이 하느님은 성전,
즉 백성 한가운데 거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이 시기에 이르러 다윗-솔로몬 통치하에 시작된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라 부르는 부분들을 가리킨다.
이 전승의 저자를 야휘스트라 부르며, 흔히 J라는 문자로 아 전승을 표시한다. 야휘스트 전승에 나타난 하느님의 모습은 극히 인간적이며 항상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다. 이 전승의 주제는 ‘축복’이며, 중심인물은 ‘왕’이다.
제1이사야로 불리는 이사야서 1-39장과 미가서가 이 시대에 기록된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다윗의 왕조와 관계를 단절한다. 왕은 다윗의 후손이 아니므로 하느님의 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은 유다와 같은 종교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바알신을 숭배하는 가나안종교와의 접촉으로 인해 위기를 겪는 신앙을 견고하게 간직하고 백성을 불러모으는 이는 예언자이다.
엘리야, 아모스, 호세아 예언자들이 이 나라에서 설교한다.
북왕국의 문학적 활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9세기부터 엘리야에 대한 전승들(열왕기 상권 17-19장 21절, 열왕기 하권 1-2장)이 편집되고, 9-8세기 사이에 엘리사의 일대기(열왕기 하권 9-10장) 등의 부분이
편집된 것을 알 수 있다.
8세기 중엽(750년경), 북왕국 멸망 직전에 아모스서와 호세아서, 그리고 ‘북쪽 왕국의 거룩한 역사’ 곧 ‘엘로히스트 전승’이 씌어진다.
그 전승 속에서 하느님은 엘로힘이라 불리고 있다.
이 전승은 문자 E로 표시된다. 엘로히스트 전승에 드러난 하느님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초월적 존재이다. 인간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그런 하느님은 주로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엘로히스트 전승의 주제는 ‘계약’이며, 그 중심인물은 ‘예언자’이다.
끝으로 새로운 법령집, 율법의 통일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후 남왕국 유다에서 다시 취해져 신명기(D)의 핵심을 이루게 된 이 법령집은 신명기 12-26장의 내용으로
원신명기라 불리기도 한다.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인 들에 의해 파괴된다.
한편, 이 무렵 남왕국 유다는 히즈키야와 요시아 등 성왕들이 통치하기도 하지만 결국 587년 유배로 그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시기의 문학적 활동을 살펴보자.
북왕국의 멸망 이후, 북쪽 출신의 레위들은 그들이 편집한 문학, 엘로히스트 전승과 법령집(원신명기), 예언자들의 신탁 등을 가지고 남왕국으로 피신해 온다.
622년에 이르러 그것이 발견되자 이를 두고 남왕국 유다의 율사들은 야휘스트와 엘로히스트 두 역사의 통합을 시도한다. 때때로 ‘예호비스트’라 불리는 그러한 통합은
창세기 15장 1절에서와 같이 야휘스트와 엘로히스트가 뒤섞여 나타나는 것으로 엿볼 수 있다. 이 전승은 약자로 JE라 쓴다. 거룩한 왕 요시아의 개혁은 북왕국의 원신명기에
기원을 둔 법령들로 구체화되며, 이 법령들이 보완되어 후에 신명기가 된다. 사람들은 신명기 속에 나타난 가르침으로부터 여호수아, 판관들, 사무엘, 그리고 왕들에 대한
전승들을 구성하기 시작한다. 신명기계 정신을 토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6권의 책, 여호수아서, 판관기, 사무엘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을 ‘신명기계 역사서’라
부르는데, 이는 유배시기(구약성서 문학 형성 제 3시기)에 완성된다.
이 시기에 활약한 예언자 스바니야, 나훔, 예레미아의 신탁들이 글로 씌어지게 된다. 이 밖에 잠언과 시편들도 상당수 씌어진다.
587년 유다는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되며, 이로써 제 3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제3시기는 바빌론 유배기(587-538)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땅과 왕과 성전 모두를 잃었다. 최후의 보루인 하느님마저 잃었다.
그러나 유배의 위대한 기적이란, 그러한 재앙이 이스라엘 신앙을 더욱 분발시키고 정화시킨 점에 있다. 그들은 할례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켜 그들만의 유일성을 고수해
나간다. 모든 것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전승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전승들을 열과 성을 다하여 재독하게 된다.
사제들은 전승 속에서 고통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백성들로 하여금 새롭게 그들의 그런 전승들을 읽게 한다. 곧 유배가, 계약에 충실하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한 결과
야훼께 벌을 받은 것이라 깨우치게 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를 재독하는 것은 모세오경을 구성하는 네 번째 문헌인 ‘제관계 전승(사제계전승)’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 전승은 문자 P로 지칭된다. 창세기 1장은 이 시기의 작품이다. 바빌론에서 해, 달, 별 등의 천체는 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 의도적으로 격하시켜 야훼의 위대함을
대비시킨 것이다.
제관계 전승으로 모세오경의 자료들이 모두 완성되게 된다. 남은 것은 오직 그 자료들을 하나로 묶는 일 뿐인데, 이는 400년경에 이뤄지게 된다.
또한 사제들은 왕국말기 예루살렘에서 성문화된 율법집을 모으게 된다. 성성법(聖性法:레위기 17장-26장)이라 불리는 이 율법은 사제직무에 관련된 기록이 주류를 이룬다.
유배로부터 귀환 이후 더욱 보완되고 이것이 나중에 레위기가 된다. 레위기 1-16장은 민수기 28-29장과 마찬가지로 유배이후(제 4시기)에 편집된다.
앞서 문학형성 제 2시기에 구성되기 시작했던 신명기계 역사서 6권(여호수아서, 판관기, 사무엘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이 이 시기에 완성된다.
예언자 에제키엘은 유배초기에, 제 2이사야(이사야서 40-55장)는 유배말기에 각각 설파한다.
이밖에 충실하신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부르심을 담은 일부 시편들과 애가가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538년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의 칙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선조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고 그들의 성전을 재건하게 해 주었다. 이로부터 33년 희랍의 알렉산더가
침공하기 이전 까지를 구약성서문학형성 제 4시기로 구분 짓는다.
이 시기중 515년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며, 이는 곧 외형적 유대교의 시작을 의미한다. 페르시아 지배하에 있던 이 시기에는 하께, 즈가리야, 말라기, 오바디야 등의 예언자가
활약했으며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녀야할 모습과 미래의 영광을 예언한 제3이사야(이사야서 56-66장)가 설파 한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는 율사들과 현자들로 특징 지워진다. 이 백성은 지난 5세기 동안 매번 고난의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자기의 역사 안에서 그 의미와 희망을 찾기 위해 수차에
걸쳐 그들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이미 씌어진 세 개의 거룩한 역사들과 신명기가, 사제이며 율사인 에즈라에 의해 수집되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율법 곧,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완성이다. 또한 역대기 상;하권, 에즈라. 느헤미야 등 4권의 역사서가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현자들은 앞 시대에 이뤄진 사색의 내용을 수집하여 대작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대에 이뤄진 교훈문학으로 룻기와 요나서가 있다. 지혜문학 가운데 욥기가 이 시대에 형성되고 잠언서도 일부 씌어진다.
예루살렘 성전에 관련된 순례기 중심의 시편들이 씌어지고, 머지않아 한 권의 책이 될 총집 속에 모이기 시작했다.
333년 알렉산더는 안티오키아의 북쪽에 위치한 이소스에서 승리함으로써 중동의 문을 열어 젖혔다. 이로부터 문학형성 제5시기가 시작된다. 이른바 희랍과 로마 통치하에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이른 것이다. 이 시기는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중간적 시기로서 신약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167년 알렉산더의 후계자인 안티오키아의 왕은 사형 법까지 제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기에 이른다.
이때가 이스라엘의 순교자의 시대요 마카베오라 불리는 자들의 시대이다. 이 백성은 164년에 자유를 다시 찾는다.
그러나 이 시기는 묵시록 저자들의 숙고를 발전시키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실 종말은 기다린다. 63년 로마가 중동에 자리잡게 된다.
헤로데 왕은 기원전 40년에서 기원전 4년까지 통치한다. 그리고 바야흐로 신약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마지막 제5시기는 제2즈가리야로 불리는 예언자가 설파한다.
이 시기의 문학은 크게 3가지 형태로 나눠진다. 먼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며 일상적인 유대인의 삶에 관심을 돌리는 교훈문학과 지혜문학이 그것이다. 토비트서와 전도서,
집회서, 아가서, 바룩서, 지혜서 등이 이에 속한다.
다음으로 문학작품들을 통해 민족심을 일깨우고 희망을 부여하는 작품들로 에스델, 유딧서, 마카베오 전;후서 등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현실의 정치적 상황에 절망하여 모든 기대를 버리고, 미래에 희망을 두는 묵시문학이 있다. 다니엘서가 그 것이다. 이 밖에 마지막 시편들이 만들어지고 시편 집이
완성된다.
이상의 다섯 시기를 거쳐 구약성서 문학은 형성이 되어왔다. 마지막 제5시기에는 당시 지중해 전 연안지역에서 사용되던 희랍의 공통언어 또는 코이네로 구약성서가 번역되기도 한다. 그것을 70인역 성서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언어로 신약성서가 씌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