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하상 바오로의 상재상서 요약 2002/11/22(금)

작성자
dolphin
작성일
2026-01-10 13:58
조회
61

원문은 한자 실력이 모자라서 풀이한 글을 요약해서 올립니다.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상재상서(上宰相書)

엎드려 아뢰옵건대 맹자(孟子)가 양자(楊子)와 묵자(墨子)를 사설(邪設)이라 하여 배척함은 그 사상(思想)이 유교학계(儒敎學界)를 해(害)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옵니다. 
옛 시대의 지성인이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 때는 그 이치와 의의(意義)가 어떠한지, 또 해(害)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여 금(禁)할 것과 금(禁)치 않을 것을
가렸고, 옳은 이치이면 하찮은 사람의 말이라도 성인(聖人)은 반드시 수용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천주(天主)의 신성한 종교(宗敎)를 금하는 그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그 의의와 이치(理致)가 어떠한가 묻지 아니 하고 사교(邪敎)로 몰아 사형 법으로 처치하여 신유년 전후에 인민의 생명을 많이 없애면서도 그 기원과 전통을 조사하여 본 사람 하나 없습니다. 
이 도리가 유교 학계에 해가 되겠습니까?, 또 일반 인민을 혼란케 하겠습니까? 천주교의 교리가 나라와 백성들에게 득(得)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감히 그릇되지 않음을 말하겠습니다. 

천지(天地) 위에는 어른(天主)이 계신데, 거기에는 세 가지의 증거가 있는데, 
   첫째는 만유(萬有)요, 둘째는 양지(良知)요, 셋째는 성경(聖經)입니다.

 만유(萬有)라 함은 건축으로 비유할진대, 문과 창, 대들보와 서까래, 담과 벽이 저절로 세워지지 안듯이, 천지의 동, 식물, 땅, 하늘 모든 것이 저절로 생겨
났겠습니까? 우주의 질서와 사계의 변화가 일정하며 흥망성쇠,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이 보이지 않는 질서의 주관자를 자연에 돌림은
유복자가 아비를 보지 않았다 하여 아비가 있음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한편의 걸작이나 한편의 명화를 보면 존경하고 예찬하듯 우주 만물의 한없이 많고 아름다움도 하나의 걸작이고 명화일진대, 드물게도 그것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음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천지가 어찌하여 그 작자(作者)가 없겠습니까? 이 만유(萬有)를 통하여 하느님이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양심이라 함은 우뢰와 번개에 누구라도 두려워하며 막다른 지경에 이르면 하느님을 불러 기원하는 것은 본래 타고난 천성이며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어떻게 섬길지 모를 뿐이며 이 양심을 통해서 어른(天主)이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이라 함은 사상과 제도가 대쪽같이 새겨지고 천지창조(天地創造)이래의 역사(歷史)가 끊임없이 기록되고 증명되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우리 나라 사람들을 그르칠 수 없습니다. 또한 중국(中國)에 전래된 경위와 동방(東方)에 비취진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경(聖經)을 통하여 어른(天地主宰)이 계심을 압니다..

이 세 가지의 증거로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 있으며 하느님의 은총이 온 세상, 온 만물에 또한 태어나 죽는 날까지 우리에게 상존(常存)하시니 그 은혜를 저버릴 수 없음을 아들이 어버이의 덕에 먹고 그 집에 살며, 그 살림을 쓰면서, 함부로 제가 잘난 체하며 ,부모(父母)를 무시하며, 섬김과 근본(根本)을 갚는 뜻을 모르면
효도(孝道)입니까? 불효(不孝)입니까? 그러므로 천주(天主)를 섬김은 마땅한 일이며 어려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며 잘못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져 천주(天主)의
계명(誡命)을 지킬 따름입니다.

 계명(誡命)이란 어른(天主)께서 계시(啓示)로서 가르치신 열 가지 계명(誡命)입니다. 그 열 가지 계명(誡命)을 종합하면 두 가지로 돌아가니 즉 천주(天主)를 만유
위에 사랑하고 남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 가지 계명은 천주를 흠숭 하여 섬기는 절차이고 나머지 일곱 가지는 자기를 닦고 성찰하는 공부입니다. 충성(忠誠)과 각오와 효도(孝道)와 우애(友愛)와 인애(人愛)와 의리(義理)와 예의(禮儀)와 지혜(知慧)가 이 안에 있으니 티끌 만한 부족함이라도 있습니까?
이 종교(宗敎)를 시행(施行)하면 모두가 평안할 수 있습니다.
천주의 계명은 그 행동을 다스릴 뿐 아니라, 그 마음도 다스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미약하여 자칫하면 죄를 범합니다.
한평생 죄와 싸우되 그 싸움이 풀리지 아니할 때 이기면 공로가 되고 지면 죄에 저촉됩니다.
공로와 죄과의 단죄는 곧 육신이 죽는 날에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번되시고, 의로우사, 선은 아니 갚으심이 없고, 악은 아니 벌하심이 없습니다.
만일 육신과 영혼이 같이 죽는 다면, 상과 벌을 어디다 베푸시겠습니까. 그러니 마땅히 영혼이 죽지 않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무릇 세 가지 혼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혼(生魂), 둘째는 각혼(覺魂), 셋째는 영혼(靈魂) 입니다.
 첫째,
생혼은 식물의 혼으로 자랄 수는 있으나 인식과 감각이 없고,
 둘째,
각혼(覺婚)은 동물의 혼으로 인식하고 감각할 수 있으나 뜻과 이치도 모르고 옳고 그른 것도 모르나,
 셋째,
영혼(靈魂)이라는 것은 인류의 혼으로 날수도 자랄 수도 있고, 인식과 감각할 수도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으며, 진리를 추리하여 이론할 수 있으므로 만물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하느님께서 태중에 태워 주신 것인데 어찌 동식물과 같이 썩어 없어지겠습니까? 이러한 영혼의 심판이 있어, 상선벌악의 대가로 영혼이 머무를 천당과 지옥이
있으며, 그 천당과 지옥이 없다함은 "눈먼 자가 하늘을 보지 않았다고 하늘에 해가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고 안 믿고는 보고, 못 보고에 메이지 않으며, 다만 이치에 합당한가 아니한가 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꼭 가서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개 국가의 임금도 상벌의 권한이 있거늘, 천지의 주인인 큰 임금(天主)의 권한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상은 지상의 벼슬과 녹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끝없는 행복입니다.
영혼의 심판이 있을 때는 이미 늦어 후회한들 소용없으며, 또한 어떠한 고초가 따라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것이 진정한 종교(宗敎)의 한가지 증거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번되고, 지극히 바르고 참되고, 절대적인 오직 하나요 둘도 없는 종교(宗敎)입니다.
천주(天主)께서 친히 세우신 종교(宗敎)인 까닭에 교회(敎會)는 거룩하고. 지위고하, 남녀노소, 모든 인류가 다같이 마땅히 실천해야 할 종교이니 지극히 공번되다고 이를 수 있고. 보편적이고 명백하고 넓고 평탄(平坦)하여 터럭만큼도 치우친 행위와 정당성을 굽히는 일이 없으니 지극히 바르다고 이를 수 있고.
천주교의 도리는 진실(眞實)하여 거짓이 없어 영원히 그르치지 아니하니 지극히 참되다 이를 수 있습니다. 초목으로 비유하여 이단의 종교(宗敎)들은 줄기가
있어도 가지가 없고 어떤 것은 잎이 있어도 꽃이 없고 꽃이 있어도 열매가 없으니 시작과 결말이 서로 연결될 수 없으나, 성교(聖敎)는 인류의 내력(來歷)과 과거, 현재, 미래의 차서(次序)가 가지가지로 다 갖추었으니 지극히 완전하다 이를 수 있습니다. 

슬프다! 금과 옥을 억지로 기와라 자갈이라 이르고, 먹어서 이(利)로운 것을 억지로 못 먹는 거라 이르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 아비와 임금을 업신 여긴다하니 성교(聖敎)의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계(十誡)의 넷째가 부모를 효도로 공경(恭敬)하라는 것인데 충(忠)과 효(孝)의 두 글자는 만대(萬代)에 변할 수 없는
도리입니다. 신자된 사람은 더욱 절실히 삼가고 조심하여 부모를 섬김에 그 예(禮)를 다하고 봉양(奉養)함에 그 힘을 다합니다. 이래도 과연 아비를 업신여기고
임금을 업신여기는 학설(學說)입니까? 임금이 금하매 실행하는 백성이 있고, 아버지가 금하는데도 실행하는 자식이 있으니, 이것도 죄가 됨은 말이 되나, 지위에
높고 낮음이 있고 일에는 경, 중이 있어 집안에 아비가 가장중하나 그보다 높은 것은 임금이며, 한 나라안에서는 임금이 가장 중하나 나라의 임금보다 높은 것은
천지의 큰 임금이십니다. 아비의 명령을 듣고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그 죄가 무겁고,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고 천지의 큰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는 더욱 커서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주를 받들어 섬김이 어쩔 수 없는 사정에서 나온 것인데 이 한가지를 들어 아비를 업신여기고 임금을 업신여긴다고 말함이 옳은 일입니까?

또 말하기를, 재물(財物)과 여자를 서로 융통(融通)한다고 말합니다.
재물은 서로 융통해야만 백성들이 서로 의지하여 생활하는데, 만일 재물을 융통하는 법이 없으면 온 나라안에서 생활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것이 좋지 못한 법이라고 금해야 될 일입니까? 여자를 서로 융통(融通)한다고 하는 것은 동물도 그렇지 아니 한 것이 있는데 하물며 그것을 성교(聖敎)에 돌리려 합니까? 십계(十戒)의 여섯째에 사음(邪淫)을 행하지 말라 하였고 아홉째에 남의 아내를 원(願)치말라 하였습니다. 여섯째 계명은 몸으로 금함이요, 아홉째 계명은 마음으로 범함이다. 성교(聖敎)가 사음(邪淫)을 거듭 몸과 마음으로 금하는데 도리어 여자를 융통한다는 거짓말을 보탭니까?. 어찌 이와 같이 윤리를 거스르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종교가 있겠습니까? 

금은 산지를 가리지않고 오직 순금(純金)이 보배가 되고, 종교는 방위(方位)를 꺼리지 않고 오직 거룩함이 참되니, 그러한 종교가 전래함에 어찌 경계가
있겠습니까? 중국은 각국 사람들이 내왕하며 불교(佛敎)도 그대로 두고 외국인도 사는 이가 많고 일찍이 금할 줄 몰랐습니다.
우리 나라도 불교의 해 끼침이 오래되었습니다. 사찰(寺刹)의 건축은 사치를 다한 것이고, 불상(佛像)은 금과 구리로 재산을 낭비란 것이며 인도(印度)의 이단(異端)이다. 성교의 금을 훔쳤고 성교의 규칙을 본떴으나 옳은 도리를 그르쳤고 윤리가 끊어졌고 기강이 뒤집혔다. 무당, 풍수, 점쟁이 상징이와 같은 사람까지도 부녀와 아이들을 홀리고 혹하게 금전과 재물을 털어 감을 예사로 보면서 홀로 성교(聖敎)만이 포섭(包攝)하는 은전(恩典)을 입지 못함은 어찌된 일입니까? 가정에, 그리고 국가에 해를 끼쳤습니까?

그 하는 일을 보고 행실을 살피면 그 인간이 어떠한가 알 수 있고, 그 가르침이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일찍이 역적질을 했습니까? 도둑질을 했습니까? 살인을 했습니까? 간음(奸淫)을 하였습니까? 또 법에도 없는 형벌을 주어 천주를 배반케 하고 더러운 욕설로 모독하는 사실이 허다합니다.
대저 천주는 만물을 만드신 큰 부모 시요, 만물(萬物)을 다스리시는 큰 주관자(主管者)십니다. 무슨 까닭으로 해마다 연달아 흉년(凶年)을 당하고 있습니까?
모두가 지친 이때에 바라건대 우리 임금께서는 밤에도 옷을 벗지 마시고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사 어지심과 덕으로 백성들을 흡족하게 하시옵소서. 

슬프다 인간들이 어찌하다 이다지 극도에 이르러 조금도 서로 아끼지 않는고? 옥안에서 지쳐서 죽고, 문밖에는 목을 베는 죽임이 끊이지 않고,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 하늘까지 부풀어올라, 아비는 자식을, 형은 아우를 부름이, 막다른 데로 쫓긴 사람이 몸 돌이킬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맑고 밝은 세상에 이 무슨 꼴입니까? 대저 목숨을 덜고 생명을 바쳐, 천주의 참된 종교의 증거(證據)가 되고 천주의 영광을 나타냄은 우리들의 분수에 있는
일입니다. 이 몸도 장차는 죽어야 할 종류(種類)입니다. 감히 말해야 할 때를 만나서 외치지 아니하고 슬프게 입다물고 죽는다면, 산더미같이 쌓인 감상(感想)을
장차 백대의 뒷세상에 폭로할 수 없겠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바로 이때에 밝게 비추어 굽어 보시와,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자세(仔細)히 판단한 다음에, 위는 정부로부터 아래로는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일변(一變)하여 도의(道義)로 돌아와서 금령(禁令)을 늦추시어 체포(逮捕)하는 법을 철회하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여, 전 국민과 더불어 제 고향에 안정하여 제 직업을 즐기면서 한가지로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를 천번 만번 바라고 바랍니다. 

우사(又辭)
또 말씀드립니다. 죽은 사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는 것은 천주교의 금하는 바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입에 공급하는 것이요, 진리와 덕행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지극한 효자라도 맛좋은 것을 부모가 잠들어 있는 앞에 차려 드릴 수 없음은, 잠들었을 동안은 먹고 마시는 때가 아닌 까닭입니다.
잠시 잠들었을 때도 그러하거늘, 영원히 잠들었을 때에는 온갖 과일과 제수(祭需)를 진설(陳設)함이 헛된 일이 아니면 거짓된 일입니다. 자식이 되어 허위(虛僞)와 가식의 예(禮)로 어찌 죽은 어버이를 섬기겠습니까?
양반 집의 신주(神主)라는 것도 천주교에서 금하는 바입니다. 이미 육체적, 혈육이 서로 연결됨이 없고, 또 낳아서 길러준 노고와도 서로 관련이 없습니다. 부모라 함이 중대한 일일진대, 직공이 만든 것이요 분을 칠하고 먹을 찍은 그것(신주)을 가지고 참 아비 어미라 이릅니까? 바른 이치의 근거가 없고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얻을지언정 천주교에 죄를 얻고 싶지 않습니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