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묵상 - 2002/11/22(금)

작성자
dolphin
작성일
2025-10-06 12:01
조회
115
욥의 고통과 하느님의 섭리

얼마 전 까지 만해도 욥기 속의 하느님을 이해하기란 너무도 부족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인간적인 사고로서, 단지 짧은 상식의 틀을 벗지 못한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의 하느님으로 나의 안에 그려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의로운 욥의 고통에 침묵하시는 하느님,
무죄한 욥을 사탄의 시험에 들게 하는 하느님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릴 적부터 잘한 사람에겐 상을, 잘못한 사람에겐 벌을 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교육 속에 자라온 상식적인 틀 안에의 사고(思考)로서는 신적인 하느님이 아닌 인간적 관점의 하느님이셨다.
욥기를 읽고 묵상하며, 신앙 인으로서의 하느님은 차원을 달리한 초월 자이시고, 세상의 모든 유형 무형의 존재들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분이시므로,
세상의 악도 하느님의 다스림에 속함을, 생명의 하느님이심을 조금은 알고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욥을 위로한답시고 무고한 욥의 고통을 책망하는 세 친구들에게서 이 어려운 의문들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고통에 절규하는 욥에게 그들은 딱한 위로 자들에 불과했다.
인간적인 동정심이나, 그의 고통에 진정으로 참여하거나, 같이 아파하지 않는 모습은 오늘의 우리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편안한 삶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선을 베풀고 하느님의 계명을 따른다는 사고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우상의 하느님으로 전락시키는 신적 모독이다.

만물의 주권자이신,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여야 한다.
하느님은 인과응보 차원의 하느님은 아니시다.
자신의 고통의 이유를 끈질기게 묻는 욥에게 폭풍 같은 하느님의 대답(욥기38,2.17.23)은 인간의 지혜와 이성의 불완전함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정신 영역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생과 사의 영역을 넘어설 수 없는 유한한 것이다.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모르고 살고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질서를 통제하시며, 지배하시고 돌보시는 분으로, 행복할 때나, 고통받을 때 외면하시지 않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나의 잘못을 단죄하시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회개하고 의지하며 기도하길 바라신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하진 못한다.
모든 피조물은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다스리심을 믿고 그분을 믿고 따르며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가난하고 고통 속에 사는 이들의 삶에 진실된 마음으로 동참할 줄 알 때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고, 그분이 우리의 희망이심을 알게될 것이다.
욥의 고통은, 자만에 빠져 이기적이고 향락적인 생활에 마음을 빼앗기는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 끝--